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 그레코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그리스]] [[크레타 섬]] [[칸디아]]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는 그리스 사람으로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(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)인데, [[그리스인]]이라는 뜻의 엘 그레코[* 사실 엘 그레코라는 표현 자체는 약간 비하적인 표현이 섞여있어서 스페인 사람들이 불렀던 의미는 그리스인보다는 '그리스놈'이라는 표현에 더 가깝다. 이사벨 1세 여왕의 레콩키스타 성공과 통일 스페인 왕국 출범 이후 이방인들에게 까칠했던 스페인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한 단면인 셈. 또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공표했으니 그의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들어있기도 하다.]로 불렸다. [[베네치아]]에서 [[베첼리오 티치아노]]의 지도를 받고, 틴토레토(자코포 로부스티)와 [[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]]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. 엘 그레코의 초기 화풍은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였고 베네치아풍의 색채법을 사용하였다. [[베네치아]]에서 화가로서 입지를 굳힌 엘 그레코는 당시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던 [[스페인]]에서 성공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갔으며 그가 원하던 당시 스페인 국왕 [[펠리페 2세]]의 궁중화가가 되었다. 하지만 그의 화풍이 펠리페 2세의 마음에 들지 않아 궁중 화가를 그만두게 되었다.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이 종교화와 [[초상화]]였고 회색빛 [[명암]]과 [[색채]], 비정상적으로 길쭉하고 뒤틀린 [[인체]]묘사로 당시 스페인에서는 [[매너리즘]] [[미술]]로 평가절하되었다. 사후 오랫동안 그의 진가가 묻혀져 있었으나 [[19세기]] 이후 재평가되어 [[폴 세잔]]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20세기 초 [[독일]] [[표현주의]]가 등장하면서 그는 미술사에서 신기원으로 이룬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. 스페인의 궁중 화가로서 [[톨레도]]에 정착한 후에 평생 그곳에서 [[그림]]을 그렸고, 스페인 왕실이 [[마드리드]]로 천도한 뒤에도 톨레도에서 계속 살다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